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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N 칼럼] 노동과 노력

  • 송고 2024.02.28 06:00 | 수정 2024.02.28 06:00
  • EBN 유재원 외부기고자 ()

유재원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대표변호사

유재원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대표변호사

유재원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대표변호사

“천재성(하늘이 내린 재능)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Genius is one percent inspiration and 99 percent perspiration).” “벌이 없으면 꿀도 없다(no bees, No honey).” “고통 없이 얻는 것은 없다(No pain, no gain).” “노력은 꿈을 실현하는 최고의 방법이다(Effort is the best way to realizing your dreams).”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력, 성실, 근면과 관련한 격언(Maxim)은 무수히 많다. ‘노력’이라는 말은 성공, 최고의 필요조건으로 꼭 언급되고 인간의 생애나 사회의 업적에는 누군가가 지속해 온 노력이 전제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는 노동에 덧붙여지는 노력이 상당히 낯설다. 노동에는 노력이라는 것이 충분조건이거나 필요조건이 아닌 것 같다. 노력=노동을 동일시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세다. 어쩌면 정당한 대가 없는 노동이거나 대가를 넘어서는 노동은 금기(Taboo)처럼 여겨지는 것이 일반이다.


어쩌면 ‘월급루팡’, ‘땡보’, ‘꿀보직’, ‘있을 때 빼먹자’라는 말이 어이없지 않은 게 현 세태(世態)다. 사회 선배들(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말하는 것 중에 ‘노력’은 결국 ‘노오오력’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꼰대질이거나 구태(old-fashioned)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직장상사는 “열심히 해라”, “잘해라”, “노오오력은 해봤냐”라는 지적질을 하고 하위계층 근로자들인 20·30세대는 ‘헬조선’이라고 맞대응하면서 세대갈등과 나라걱정(?)이 커진 세태다.


그런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업 창업자의 성공기에는 노력이 단골로 등장한다. 스타트업에서 전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IT기업 창업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재벌 회장들의 일대기에서 꼭 등장하는 것이 노력이다. 이순신 장군이 부러진 다리를 싸매고 과거시험에 도전하는 이야기나 울산 모래사장에 조선소를 짓겠다고 노숙을 했던 정주영 회장이나 한결같다.


그간 위인들의 격언에서 등장하는 노력이라는 말이, 지금은 헬조선을 지칭하는 대명사처럼 추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근로자(종업원)의 노동이라는 것과 사업주(사장)의 경영에서 ‘노력(perspiration·effort)’은 한쪽에서만 유가치하다는 것으로도 보아야 할 것인가.


노동은 우리 헌법상으로 근로의 가치와 직결된다. 우리 사회 구성원은 노동을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 않고, 성실히 일할 근로의 의무(헌법 제32조 제2항)를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일자리지원, 조세혜택 등을 주고 있고 임금보장과 근로환경조성을 강행(강제력)하고 산업재해로부터 보호하며 산업안전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노력하지 않는 근로자, 노력하지 않는 노동은 일응 말이 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 사회는 일하지 않고 소득을 누리는 불로소득과 유한계급을 배척하는 사회적인 기초에 서 있다. 그것이 그간 1950년 전후(戰後) 70년을 이어오면서 G7의 경제대국으로 자리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그 근간에는 노동생산성이 높다거나 고용률이 높다는 통계적인 부분이 아니라, 근면성실한 근로자계층의 사회적 공헌이 세계적인 평가를 받아서이다. 전세계를 통틀어, 우리 근로자 계층은 ‘고부가가치 노동력’이거나 ‘근면한 근로자’와 동일시되는 그룹이었고, 이 시대에 (대한민국 근로자) 노동의 필요조건으로 노력이 등장하기도 했다.


근로자들은 ‘내가 왜 열심히 해야 해?’, ‘내가 단지 사장이 아니라서 이렇게 노예생활하는 건가?’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대한민국을 가리켜 ‘헬조선’이고 ‘이미 끝장난 나라’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직장상사, 사업자, 고용주 등등은 젊은 자신만큼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왜 희생을 강요하는가’라고 묻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각광받으면서 빼어난 건축설계를 남긴 일본 건축가는 정작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는 ‘폭군’, ‘독재자’, ‘사람을 갈아넣는다’는 악평이 자자하다. 무학 출신으로 오로지 독학과 아이디어만으로 건축의 지평을 열었던 그 건축가이기에 세간의 악평은 참으로 안타깝거나 씁쓸함을 가져온다.


‘노동과 노력’ 물론 같거나 유사한 것이 아니다. 노동의 본질이 노력이 아니고 노력 자체가 노동(노동의 생산성)을 대체한다고도 볼 수 없다. 하지만 노동과 노력은 무관하지 않다. ‘인간이 노동을 한다’는 것은 더럽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자유인이 자신이 무언가를 누리기 위해서 필요한 영위(榮位)활동이다.


노동을 회피하는 계층은 사회에서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며, 소외계층과 빈곤층을 만들어 내는 시초가 된다. 노력을 하지 않는 노동은, 그 허울로는 마치 ‘사회지도층 = 유한계급 = 무노동 자산가’처럼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무자산 사회계층의 고립과 박탈감만을 가져올 뿐 정작 삶(생계)을 경영할 수 없는 경제적 파산으로 빠지게 한다.


많은 노동자는 자신의 몸과 정신을 움직이며 부가 가치를 창조하는데 기여하고, 정상적인 사회라면 이 모든 활동에 대하여 단지 노력으로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정당한 가치(대가)를 가지는 노동으로 존중할 것이다.


결국 노동은 노력이 창출하는 유의미한 가치이고, 사회는 좋은 일 또는 괜찮은 일(디센트 워크)을 종사하는 노동과 노력에 넉넉한 대가를 지불하게 해야 한다.


우리 기성세대가 MZ를 가리켜 ‘노동에 노력이 빠져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마치 결과에 원인이 없다고 힐난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오히려 노력을 통해 당신들의 노동은 점차 유가치하고 그 노력은 정당한 노동으로서 대접받는다는 긍정의 선플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노력이 단지 노력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우리사회에서 정당한 노동으로 존중받아야 하므로, 성실한 근로에 대하여 충분한 응당의 대가를 지불하여야 할 것이다.


2024년 대한민국. 은둔형 외톨이 100만명, 청년 노동의 회피 현상은 이미 시작되어 우리 사회 미래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하지만 ‘일하는 보람이 있는 인간다운’ 일자리, ‘정당한 보상이 따르는 노동’은 그간 ‘노력’에 관한 동서고금의 가치를 실현하게끔 해줄 것이다. 그 노력이 만들어내는 그 건강한 노동의 가치가 우리 사회를 살려낼 것이다.


땀은 눈물을 사라지게 한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노력하는 근로자를 결코 배신할 수 없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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